150821 연극 <스플렌디즈 Splendid's>




아르튀르 노지시엘(연출), 장 주네(극) @ 명동예술극장

명동예술극장은 흥미로운 공간이다. 외국인 관광객,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 길거리음식을 파는 상인들, 그냥 구경온 사람들이 번잡하게 뒤섞여 있는 명동 한 가운데에 외딴 섬처럼 고고하게 들어서있는 극장. 인파를 뚫고 극장 안에 들어서면 현란한 소리가 마구 섞여있는 거리를 차단하기라도 하듯 금방 조용해지면서 공기도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런 명동예술극장에서 본 연극 스플렌디즈.

대략적인 시놉시는 아주 흥미롭다. 고급 호텔 스플렌디즈에서 부잣집 딸을 납치살해한 8명의 갱들과 그 사이를 파고든 1명의 경찰. 무턱대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기대해보았지만 연극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잔혹한 갱이라는 설정이 무색하게 그들은 시종일관 절제된 움직임과 시를 읊듯이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나른하게 부유하는 듯한 느낌으로. 느릿한 음악과 라디오 중계, 낮은 조명이 이런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나는 졸고야 말았다. 으허. 어둡고 조용한 분위기. 어딘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권태로운 인물들...)

이 극에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끌고가는, 다변적인 인물은 바로 경찰이다. 그는 몰래 갱들에 접근한 인물. 사실 자기는 무법자인 갱스터의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하며 그들 사이에 섞여들어간다. 갱스터들이 실패하고 잡혀들어갈 위기에서도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하던 그는 갱들이 마침내 순순히 총을 내려놓고 포기하자 돌변한다. 이 극의 반전이자 가장 인상적인 장면. 영화 속 총격전의 슬로우모션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며 사그라드는 갱들과 유일하게 총을 들고 있던 경찰의 말. "어서 와. 이미 내가 처리해뒀어."

극은 어려웠다. 불연속적인 대사들도 뭔 소리인가 싶었고. 그럼에도 극의 미장센이 인상적이어서 장면장면이 머리속에 남는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각각 등장인물들 몸에 새겨진 문신은 스스로에 대한 존재감을 상징하고 있었고, 문신을 모두 가린 채 정장을 입고 나타났을 때는 그 존재감 자체가 희박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무대와 조명. 천천히 꺼지고 켜지는 조명과 초록빛의 호텔 복도. 하나의 최고급 호텔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거대하고 화려한 감옥이다. 양끝에 있는 거울과 관객을 위한 자막 조차도 무대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호텔의 가장 커다란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은 장 주네의 무성 영화 <사랑의 찬가 (Un Chant D'amour)>의 한 장면.

동성애, 관음증, 새디즘 등 전위적인 요소들과 상징으로 가득한 흑백 무성 단편 영화. 감옥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표출하는 욕망이 그려진다. 전혀 다르지만 왠지 트뤼포가 생각나기도. 연극 시작 전 이 영화를 먼저 상영해주는데 묘하게 연극과 겹쳐지는 부분들이 그 음울한 분위기가 좋다. 스플렌디즈 극을 절반이라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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